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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단위로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픽셀 아티스트"
7,338 Read 20 December 2023
작고 네모난 깜빡이는 점. 과거 흑백 모니터 속에서 이 점들은 불빛이 되어 깜빡이기도 하고, 때로는 적을 피해 미사일을 쏘는 전투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픽셀을 한 점 한 점 찍으면 사람의 얼굴이 되고, 그걸 움직이면서 표정을 짓게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죠. 픽셀 그래픽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할 만큼 기술이 발전하면서 잠시 설 자리를 잃은 듯했으나, 최근 여러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주된 표현 기법으로 쓰이며 사람들에게 다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서 픽셀의 유행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올해로 서비스 27주년을 맞은 <바람의나라> 픽셀 아티스트가 말하는 픽셀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온라인 게임 <바람의나라> 프로젝트에서 픽셀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김소미입니다. 게임에서 사용되는 캐릭터, 몬스터, 오브젝트, 이펙트 등의 픽셀 작업물부터 컨셉 일러스트까지 전반적인 아트 리소스 제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부 시절, 조소와 미디어아트를 전공하며 종종 게임학과 수업들도 수강하곤 했습니다. 컨셉 일러스트를 지망하게 되었던 건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던전앤파이터> 아트북을 처음 접한 이후였어요. 제가 작업한 캐릭터가 게임 안에서 다채롭게 구현되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멋있게 느껴졌거든요.
컨셉 일러스트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며 리프레시를 위해 게임을 찾았었는데, 당시 사용하던 PC로는 고사양 게임이 실행되지 않았어요.(웃음)
자연스레 저사양에서도 즐길 수 있는 픽셀 게임들을 찾게 되었죠. 그 당시엔 <스타듀밸리>, <테라리아>, <스타바운드>와 같이 혼자서 플레이하는 게임들을 즐겼던 것 같아요. 확실히 어렸을 적 많이 플레이했던 MMORPG들보단 매니악하게 느껴지면서 신선하더라고요. 그때 게임을 즐기면서 자연스레 픽셀 아트의 매력에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큰 캔버스 크기에서 작업하던 일러스트와는 달리, 픽셀 아트는 100분의 1 정도의 캔버스에서 함축적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밌게 느껴졌거든요. 픽셀 하나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과, 약간은 뭉뚱그려 표현된 작업물이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취업준비생 시절 플레이하던 <스타듀밸리>는 NPC와의 대화창에 나타나는 초상화를 유저가 직접 커스텀할 수 있었어요. 방 안에 박혀 포트폴리오만 준비하다가, 기분 전환용 취미로 NPC 초상화를 도트로 그려서 커뮤니티에 올리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관심만 가지던 픽셀 아트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커뮤니티에 올렸던 도트 초상화가 많은 분께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저도 자신감을 얻어 계속 작업을 이어갔었습니다. 같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친구가 제 작업물인지 모른 채 커뮤니티에서 가장 좋아하는 초상화라며 공유해 주었을 때 인기를 실감했어요. 이후 1차 창작물을 가지고 서울일러스트페어에도 출품했던 기억이 나네요.
2022년 12월에 출시한 ‘베베천사 치장세트’가 유저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가 유저들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여러 시도 끝에 나온 결과였기에 더욱 기뻤습니다. 이 세트의 아이템들이 각각 기존 유저들의 코디와도 어울릴 수 있도록 작업해 인기를 얻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동향을 파악하며 데이터를 쌓아 더 좋은 리소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 <바람의나라> 베베천사 치장 세트 이미지
제 작업물이 출시되는 날엔 무조건 게임에 접속해서 직접 플레이 해보며 오류는 없는지, 유저 반응은 어떤지 확인해 봅니다. 커뮤니티에 검색도 해보고 특히 치장세트는 거래소에 들어가서 인기를 확인하기도 해요. 그리고 유저분들이 코디한 캐릭터를 조금 떨어져서 구경하며 감탄하기도 합니다. 게임할 때 자꾸 옆에 수상한 캐릭터가 돌아다녀도 모른 척해주세요. (웃음)
지난 2020년 겨울에 ‘백두대란’ 이벤트를 준비하며 NPC, 미니게임 일러스트, 배경 오브젝트, 데미지 스킨, 말풍선 등의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중 NPC는 입사 이래 첫 작업이었는데 이벤트의 배경이 되는 백두촌에 어울리는 판타지 요소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많은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도서, 박물관 사이트, 인터넷 자료 등을 참고했고 NPC에 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보부상이 되어 생선을 파는 천연기념물 수달, 추억의 달고나 장수, 평상에 앉아있는 백두할아버지, 행복하게 식사하는 할머니와 손녀, 개를 사랑하는 호탕한 백두털보까지 다양한 NPC를 정성 들여 만들었습니다. 첫 NPC 작업인 만큼 애정이 넘쳤었고, 제 작업물로 유저분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작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존 직업들을 리마스터 했는데, 대표 직업 캐릭터들의 컨셉을 작업하면서 성격이나 분위기 등 각각의 캐릭터 특성이 잘 드러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존의 직업 일러스트와 연결되면서도 새롭게 작업한 캐릭터가 유저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도록 작업했어요. 기존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새로운 호감을 느낄 수 있도록요.
▲ 인도 NPC, 백두대란 NPC, 리마스터 궁사 디자인 등 작업 이미지
오픈북 시험을 치르는 것 같아요. (웃음)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가 한곳에 모여있고, 선배들의 경험을 토대 삼아 나만의 답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도트 그래픽을 이어 나가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발굴하는 과정에는 많은 고민도 따릅니다. 27년 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 방대한 그래픽 리소스가 서로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점검과 테스트를 반복하곤 합니다. 물론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아트 리소스를 제작하는 과정이 개인의 성장에는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오전마다 모든 팀원들이 모여서 스크럼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첫 스크럼 시간에는 발표가 부담스러워서 손에 땀이 났었어요. 지금은 나름 편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지만요. 아낌없는 피드백이 오고 가서 작업 방향성 설정에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의견도 편하게 나눌 수 있고요. 전혀 딱딱하지 않고 평소에도 흥미로운 그림이나 새로운 소식 등이 생기면 서로 활발히 공유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내에서 열리는 높은 퀄리티의 강연들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최근 1994홀에서 상영 간담회를 한 스톱모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도 재미있게 감상했어요. 점심식사 메뉴가 맛있고 다채롭다는 점도 자랑거리 중 하나인데요. 약간의 부작용으로 요즘 살이 좀 쪄서 사내 GX(Group Exercise) 프로그램을 신청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좀 엉뚱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게임의 흔적을 사옥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마비노기>를 오랜 시간 좋아했는데 마침 저희 팀이 새로 이사한 장소가 이전에 마비노기팀이 근무했던 곳이라
그 흔적과 온기를 느끼며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픽셀은 여러 게임 그래픽 중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PC와 모바일, 콘솔 등 여러 플랫폼으로 게임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유의 감성적이고 레트로한 느낌을 좋아하는 팬층이 두터워 실제로 많은 곳에서 픽셀아티스트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요에 비해 실제 픽셀 아티스트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 다른 아트 직군보다는 실무로 빠르게 진입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갓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시는 분들도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시고 쌓아온 노력이 좋은 기회로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픽셀 아티스트 지망생을 언제나 응원합니다.